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멕시코 영화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옆 나라가 미국이다 보니만큼 영화산업이 굉장히 빠르게 형성된 편이다. 이미 3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할리우드가 눈독을 들여서 각종 인적교류나 투자들도 활발했다. [[존 포드]]나 프레드 진네만 같은 할리우드의 거장들도 멕시코 영화계랑 같이 협업했을 정도. 특이하게도 미국과 달리 [[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]] 같은 구 소련 몽타주 이론가들 영향도 많이 받았던 편이다. [* 당시 에이젠슈타인은 미국에서 활동 중이었고, ¡Que viva México!라는 영화를 찍다가 엎어지기도 했다.] 1930년 토키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60년대까지 급속도로 성장했는데 자국에서는 이 시기를, 시절을 황금기라고 일컫는다. [[샘 페킨파]]의 [[가르시아]]에서 보스 역을 맡기도 했던 [[에밀리오 페르난데즈]]가 이 황금기 멕시코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힌다. 자연히 자국산 스타 배우들도 많이 배출한 편이다. 1950년대 초 [[루이스 부뉘엘]]이 [[스페인 내전]] 망명생활을 접고 멕시코에 정착했다. 부뉘엘은 멕시코에서 유럽 시절부터 만들어온 초현실주의를 당대 [[네오 리얼리즘]]을 결합한 영화를 만들었으며 [* 부뉘엘이 본격적으로 발성 영화를 만든 것도 멕시코 시절부터다.] 평단의 지지를 받게 된다. 그리고 멕시코 시절의 성과를 종합한 비리디아나는 논란과 동시에 [[칸 영화제]] [[황금종려상]]을 안겨주기도 했다. 때문에 부뉘엘은 멕시코 영화감독으로도 분류되며, 멕시코 영화 역시 스페인 영화랑 인연이 깊다. 멕시코 감독인 아르투로 립스테인은 부뉘엘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그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. 립스테인은 부뉘엘이 유럽으로 떠나고 난 뒤 본격적으로 감독활동을 시작해 멕시코 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잡는다. 196-70년대 검열로 영화산업이 휘청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엔 [[기예르모 델 토로]], [[알폰소 쿠아론]], [[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]]로 대표되는 누에보 시네마 멕시칸 감독들이 등장해서 멕시코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. 이들이 할리우드 진출에도 성공한 이후로는 미셸 프랑코나 아마트 에스칼란테, 카를로스 레이가다스[* 한국에서는 천국의 전쟁 [[제한상영가]] 사태로 유명하다.] 같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감수성으로 무장한 신예감독들이 멕시코 영화를 이끌고 있다. 멕시코 치안이나 범죄 때문에, 몇몇 영화인들은 멕시코를 망명하는 경우가 많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